일반학교로 떠났다 3년 만에 돌아온 그, 따뜻하게 손잡아줄 친구가 절실한 이유
얼마 전부터 위고가 우리 학교에 다시 다닌다. 3년 만의 귀향이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대안 학교인 우리 학교는 개교 때부터 학생이 한 번 나가면 다시 받아주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반 학교에 가서 뒤돌아보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의미에서다. 지금까지 일반 학교에 보낸 100여 명의 학생이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 몇 명만 빼고 말이다. 이 친구가 그 몇 명에 들어간다. 아이들을 위해 만든 규칙을 아이들을 위해 없애버렸다.
문득 3년 전 우리 학교를 떠나갈 때가 생각난다. 새로 바뀐 환경과 정체성 혼란을 겪는 시기여서 항상 불안했다. 사회와 학교에 불만을 가득 안고 있는 이 친구와 학교는 항상 긴장과 갈등 관계였다. 갈등이 무르익던, 이제 막 더위가 한창 시작할 무렵 어느 날 이 친구는 학교를 나가버렸다. 시간이 지나 소식을 들으니 막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러시아 학교에 다닌다는 거였다. 그리고 일 년쯤 지났을 무렵 일반 중학교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지난해에 불현듯 학교에 한 번 찾아온 적이 있다. 멋진 청년으로 자라고 있었다. 건들건들한 모습도 그 나이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나름 잡혀 있었다. 쉽지는 않은 세월을 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웃는 모습은 정말 천진난만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왜 싸우느냐"고 물으니 "싸우지 않으면 무시당한다. 무시당하지 않으려 싸운다"고 했다.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서 그 뒤 여러 번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때 데려오고 싶었으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늘의 뜻이려니 했다. 그리고 또 학교를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잘 지냈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던 차 몇 주 전 전화가 한 통 왔다. 내가 학창시절 참 좋아했던 선배님이었는데 이제는 교감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위탁 학생에 대한 문의였다. 나와 선생님들은 직감적으로 이 친구이겠거니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짐작이 맞았다.
위고를 다시 받아들이는 문제를 놓고 학교 선생님들과 의논을 하면서 아이들에게도 물어봤다. 학교가 잠시 술렁거렸다. 뭔지 모를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안나에게 물어봤다. 위고가 다시오면 어떻겠냐고. 안나는 진심으로 반기면서 좋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 반응도 비슷했다. 나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다시 한 번 더 이 일을 잘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말 우리 학교를 도와준 교수님이 진행하는 벽화 프로그램이 있어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는데 이 친구도 지원했다. 비로 인해 벽화 자원봉사가 취소되었는데 연락이 이 친구에게만 안 되었는지 혼자 학교에 나왔다. 나온 김에 내년에 교실이 더 있어야 해 수리가 필요한데 같이 일하자고 했다. 둘이서 석고보드를 붙이면서 호흡을 맞췄다. 키도 크고 힘도 세고 감각도 있어 곧잘 이해하고 따라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미국청소년대사관에 깔려고 씻어둔 매트를 같이 깔았다. 나는 이 친구에게 "우리 학교는 우리가 쓸 교실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혹 운이 좋아 좋은 후원자를 만나면 멋진 교실이 생기지만 대부분의 일은 우리 스스로 해낸다"고 하자 주저하지 않고 좋다며 자기도 같이하겠다고 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대답이 시원시원해서 듣기 좋았다.
어쩌면 우리 학교도 이 친구와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3번 이사를 한 것도 비슷하고 아직도 무엇하나 안정된 것이 없는 것도 그렇다. 다문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의 고민의 수준이 여기까지가 아닌가 한다. 혹자는 우리를 두고 '계륵'이라고 했다 한다. 닭 잘 잡아 배부르게 먹고 나니 닭갈비가 고민이라는 거다. 인구 늘리고 출산율 높이는 데는 좋지만 그 부산물로 태어나고 함께 들어온 친구들과 그 학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적 시각은 이처럼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특히 이런 시각은 정책을 입안하거나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가져서는 안 된다.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우리 사회의 동일한 구성원이라는 슬기롭고 균형 잡힌 인식이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한 시기가 아닌가 한다. 우리도 노력할 것이다. 아울러 질풍노도의 시기를 걷고 있는 이 친구에게 우리 학교는 좋은 친구가 되어 옆에서 손잡고 같이 걸어가 줄 것이다.
아시아공동체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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