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인력 없어 난관, 이주민 인터넷 뉴스…청소년 참여 새 희망
얼마 전 학교 선생님 한 분이 "교장 선생님, 작년에 등록한 인터넷 뉴스 ACN(Asia Community News)이 어떻게 되어 갑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일이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는 걸 선생님도 알면서 왜 물어보나 생각하면서 "쉽지 않습니다"하고 지나가듯 말했다. 이주민 사회적기업인 통·번역센터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어 지난 4년간 진행해 왔으나 이런저런 난관으로 진척이 어려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포기에 가까운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문득, 지난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보통은 어려운 한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얼마간은 일이 풀려나가는 게 맞는데, 이 일은 그런 일상적인 법칙도 비켜갈 정도로 막막했다. 작년에 이주여성의 사회적 일자리를 접으면서 진척이 더 어려워졌다. 핵심인 통·번역 인력이 없으니까 말이다. 언어의 장벽을 없애는 일인 통·번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무엇으로 일을 한다는 말인가?
그래도 작년에는 지금보다 나았다. 언론인 출신 지인과 관심을 가진 몇몇이 모여서 회의하는 구조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고 자금도 많이 부족하다. 고생 끝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다국어 사이트는 개발하였는데, 사이트를 운영할 다국어 핵심인력이 없다는 게 큰 문제였다. 어려움이 닥칠수록 작년에 다국어 사이트가 만들어졌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니 걱정 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던 후원자와 지인들이 의도는 좋으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라 말하면서 학교 일에나 더 집중하라고 부쩍 충고를 많이 한다.
충고들이 하나도 틀리지 않지만 필자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이 사업이 정말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감' 때문이다. 나는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감은 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또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언어의 장벽이 없는 세상'이란 슬로건이 얼마나 보람되고 좋은가? 전 세계가 교통수단의 발달과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통신수단의 혁신으로 소통의 장벽이 없어졌다고 하나, 언어로 막힌 장벽을 없애지 않고서는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필자 생각이다. 이런 내 생각에 세상 사람들은 영어로 소통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구상 인구가 100명이라 가정할 때 영어로 소통하는 사람은 9명이고, 중국어 13명, 힌두어 8명, 스페인어 6명, 러시아어 6명, 아랍어 4명 그리고 나머지 반은 한국어 등등을 사용한다. 이 소통의 장벽은 결국 정보의 장벽이 된다. 정보의 장벽은 빈곤의 장벽이 될 수도 있다.
두 번째 미련은 ACN이 우리 아이들의 놀이터(직장)가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 크면 적어도 2개 이상의 언어를 할 줄 아는데, 학교에서 꿈을 키우고 자라 나중에 이런 일(언론)이 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면 마음껏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좀 더 고민하고 고생하면 길이 열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ACN의 진척에 대해 물은 것이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이야기하던 중 선생님은 주저 없이 "교장 선생님,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ACN은 우리 아이들이 있잖아요. 아이들과 함께 언어의 장벽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하고 말했다. 순간 나는 머리가 띵해졌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나는 언제나 우리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보살펴 주어야 하는 존재로만 여겼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대로 언어의 장벽이 없는 세상을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청소년들이 시작하는 것도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아공동체학교만 해도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따갈로어, 베트남어에 능통한 학생이 많은데 말이다.
지금 아시아공동체 학교에서는 지역 청소년들과 함께 '아시아공동체 청소년 대사관'을 만들고 있다. 진행과정에서 청소년들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의력과 추진력, 그리고 그들만의 소통으로 멋진 창의관을 만들어 가듯이 다문화 청소년과 일반 청소년들이 함께 만드는 '언어의 장벽이 없는 세상', 이제 그들과 함께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언어의 장벽을 없애는 일에 어른들의 적극적인 동참도 기대해 본다.
아시아공동체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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