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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안범준
  • June 13, 2013 18:02  |  
  • Kr
  • 프로필이미지 Translated by 안범준Korean
  • [국제신문2012년08월01일]사회적기업과 다문화 학교
  •  
    언어 등 장벽 없애고 적응·경제안정 돕는 다문화 사회적기업, 이주민의 희망되길
     
    2012-06-19.jpg

     
    이주민의 한국생활 적응과 경제적 안정을 위해 사회적기업(㈜아시아커뮤니케이션) 운영을 시작했다. 서른 명으로 시작한 사회적기업의 직원이 지금은 10명도 되지 않는다. 결혼해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을 둔 현재까지 가정 경제에 변변찮은 도움이 되지 못했던 내가 남의 가정살림까지 걱정하며 사회적기업을 운영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 걱정이 되었다.

    이주민을 위해 시작한 사회적기업의 주요 사업은 통·번역과 외국어 교육, 다국어 뉴스 제공이다. 이 기업을 통해 이주민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사회적 일자리로 본다면 전국 최초의 사업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긍정적인 반응보다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 사회적기업 운영은 아시아공동체학교에 도움보다 피해를 더 많이 준 것 같아 선생님들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가 한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의료관광 사업이다. 통·번역 일은 해야 하는데 일거리는 없고 해서 시작했는데 반응도 그렇고 수익 면에서도 괜찮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 년 만에 사업을 거의 접어야 했다.

    우연하게도 이 시기에 러시아 학교도 함께 진행되었다. 우리 학교에 러시아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요즘 용어로 중도 입국 청소년들이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이 어린 친구들보다 나이가 차서 들어오는 학생들이 고민이 많은 것 같았다. 내 생각으로 한국에 검정고시제도가 있듯이 러시아에도 검정고시제도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들을 외국인 신분으로 대학에 진학시켜주면 이들은 성인이 되면 자신들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나갈 것으로 생각하고 이 방안을 추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차에 주위의 도움과 우리 학교에 초청강연 온 한국에서도 꽤 유명한 귀화 러시아인 교수가 우리의 사정을 알고 적극 돕겠다고 나서면서 일이 진척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적 일자리에 당연히 교사 자격이 있는 러시아계 이주민을 선별해서 뽑았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그랬던가? 일이 잘못되려고 그랬던지 러시아 학교는 의료관광이 한창 뜨기 시작할 무렵 이를 의욕적으로 진행하던 한 병원에서 스폰서로 나서 건물을 임대했다. 자연히 러시아 학교는 우리 학교가 아니라 그 건물에서 운영되었다. 사회적 일자리 직원들도 당연히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우리 학교 학생들은 40명 전후였고 러시아 학생들이 10여 명이었는데, 나중엔 우리 학교 학생들이 거의 다 새로 생긴 러시아 학교로 옮겼다.

    나는 일이 이렇게 되도록 거의 눈치를 채지 못했다. 뒤늦게 알고 일을 수습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학교는 휘청했다. 나는 죄인이 되었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나중에 우리 학교를 도왔던 교수가 한국에 와서 대신 사과를 했지만, 그때 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교수가 사과할 일도 아니었는데 내가 속이 좁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내가 부끄럽다.

    그리고 많은 실패 속에서도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은 다국어 뉴스다. 우리 사회적 일자리 직원들인 이주민에게 통·번역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자국의 뉴스를 하루에 하나씩 번역하게 한 것이 발판이 되었다. 이를 국가별 뉴스로 정리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국가별 뉴스 코너를 만들어보았다. 처음엔 호응을 받지 못했으나 거듭 개발하여 4년 만에 조그만 결실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사회적기업의 슬로건을 이제야 정했다. '언어의 장벽이 없는 세상'이 그것이다. 우리 사회적기업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 사람들이다. 구글과 애플도 못해낸 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구글과 애플이 해낸 일을 내가 다시 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었으나 묵묵부답으로 쳐다만 봤다.

    많은 실패와 경쟁 속에서도 성공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적기업이 다문화 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희망이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시아공동체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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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2012년08월01일]사회적기업과 다문화 학교
201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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