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감문 >
2013년 10월 31일
이번 여행은 준비과정부터 여느 여행과 많이 달랐다.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함께 1달에 걸쳐 준비한 행사인 귀신축제와 매년 중3과 고3 그리고 선생님들에게 주어지는 행사인 기말고사 등 기타 여러 행사들의 여파가 아닐까 하고 일개 학생인 나는 생각해 본다,
이렇듯 한 눈에 봐도 바쁜 시간들의 연속이었지만, 생태부 소속 학생들은 그들 나름 여행지를 찾고 조사하고 PPT를 만들어 발표하는 등의 노력을 보였고, 일반 학생들도 자기 팀의 식단을 짜고 여행가기 바로 하루 전날 늦게까지 세상밖으로 코스를 조사하는 등의 수고를 보였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학생들이 여행을 비롯한 여러 행사 준비에 얼마나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매우 긍정적인 영향일 것이다. 가치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은 매우 유익한 영향일 것이다. 주제 넘는 말이지만 우리학교에서 진행되는 모든 행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사실을 긍정적이게 인식시키는 것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번 여행은 준비 과정부터 분주했던 만큼 더욱 뜻 깊은 여행이라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나는 사소한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짓을 즐겨한다. 부여된 의미의 대부분은 가식이겠지만,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긍정적인 사고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랄까,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멘탈의 붕괴를 막는데 효과적이다. (중3짜리의 살아가는 노하우라고나 할까...) 좌우간에 이런 뜻 깊은 여행의 시작은 안타깝게도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나빴다면 나빴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쯤 되면 알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소감문을 기행문 형식으로 쓸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비평문도 보고서도 아니다. 쓰고 싶은 대로 쓰되 소감문이라는 느낌이 약간 가미되도록... 그러므로 이 글에서 전하고 싶은 말은 딱히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여행의 시작을 들여다보자.
언제나처럼 원래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온 사람부터 지각한사람. 다양했다. 다양했기 때문에 매우 평범했다. 지각생이 좀 많았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지각생들 덕분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 그 문제는 서울에 도착하고 숙소에 다다를 때까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고, 지적하지 않았다. 정말 사소한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작조 작아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사소한 문제. 하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라도 지적하시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시지 않으셨던가, 나는 이건 분명한 모순이라 생각한다. 이 모순이 무엇인지 밝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아닐 것이다. 확신 할 수는 있지만, 지금 그건 아닐 것이다. 장난스럽게 말하자면, 지금 그것과 내가 말한 문제. 즉 두 가지 이상의 문제가 있었지만, 발견하지도 또는 지적하지도 않으셨다는 말이 된다. 이 억울함(?)이 지금부터 써내려갈 글의 시발점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 지금부터 써내려갈 글‘. 바로 책에 대해서 이다. 버스에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점,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지적해보고 싶다. 바꾸고 싶다. 주제 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그거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럴 것이다. 앞에선 전하고 싶은 말은 딱히 없을 것이라고 할하긴 했지만 어쩌면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바로 이 사실에 대해 한탄하고자함일지도 모른다.
Q. 왜 버스에서 책을 읽을 수 없는가?
체험학습은 수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전자기기의 사용은 불가능 하다. 하지만 추억, 풍경을 남기기 위해, ‘체험’의 의의를 살리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은 가능하다. 즉, 사진을 찍는 것은 자유로우며 사진을 찍는 도구는 사진기가 아닌 핸드폰이어도 무관하지만, 어떤 전자기기를 사용하든 ‘사진’이외의 용도로는 사용해선 안 된다. 단, 예외는 있다. 또한 변경사항도 있을 수 있다. 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노래도 들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체험학습 역시 수업이다. 방과 후라도 교내에서 핸드폰을 사용해선 안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것이다.
그러나 책은? 책도 그러한 규칙이 적용된다. 교내에서 평범한 책을 읽어선 안 된다는 소리는 들어 본적도 없다. 이에 학교 측이 주장하는 내용은 이러하다. “책과 소통하지 말고, 친구와 대화로써 소통하라.” 하지만 이 주장은 현실과 비교했을 때 굉장한 모순들이 있다.
‘친구와 대화하라’는 상식적인 수준의 대화를 뜻할 것이다. 당연히 1초도 쉬지 않고 대화를 소리일리는 없는 것이 분명하다. 책을 읽는 시간은 대개 대화를 하지 않을 때이다. 그러니 대화를 하지 않는 동안에는 책을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규칙상 불가능 하다. 사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럭저럭 수용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허점이 있다.
그 첫째. 수면은 어떠한가?
위와 같은 논리라면 수면 역시 취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다. 자면서 정상적인 대화를 했다는 사례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수면을 취하는 것에 있어서 아무런 규칙적 제재는 없다.
수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자면, ‘자도 된다.’ 이다. 사람에겐 대개 수면욕이라는 것이 있다. 화장실이 급한 사람을 위해 예정보다 빨리 휴게소에 들리는 경우가 있듯이 잠을 자고 싶은 사람에겐 상식의 선 안에서는 수면을 취하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학교 측도 비슷한 입장이지 않을까 싶다.
그 둘째. 수다(고성방가)는 어떠한가?
대화는 해야 한다. 어느 정도 숙면을 취할 필요도 있다. 이제 와서 다시 수업의 예를 드는 것도 이상하지만, 예를 들어보자. 수업시간에 소란을 피우는 것이 가능 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아니다.’ 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경우는 우선 수면을 방해한다. 심한 경우 운전을 방해한다. 나아가 독서를 방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재를 가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버스내부가 조용하다고 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그 셋째. TV는 어떠한가?
이번 수원 여행에서는 교육을 위해 TV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일반 방송을 보는 용도로도 사용하였다. TV는 되지만 책은 안 된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책은 혼자 보는 거지만, TV는 여럿이서 보는 것이므로 대화와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뭐 이런 논리는 아니리라 믿는다.
TV의 사용은 노래와 더불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도구였다고 한다면 과거의 예를 들고 오겠다. 근 몇 달간 TV를 사용한 적은 없었지만, 과거에는 수차례 있었다. 부적절한 증거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렇다. 책은 탄압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노래’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나의 의견을 말하자면, 책은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하지만 노래는 그렇지 아니하다. 긴말은 하지 않겠다.
책은 탄압받아 마땅한 존재이지 않다. 책의 규제는 반드시 풀려야 한다.
여행은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만들어가는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이 행복과 즐거움은 앞에서 이야기 했던 사소한 분제와 같은 약간의 트러블을 관대하게 받아들여주는 또는 잊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효과는 나쁜 것이 아니다. 비록 여행의 목적이 즐거움과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수면이 그러하고 약간의 소란이 그러하였듯이 완벽함만을 추구하기보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부분도 꼭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온 여행이 비탄과 탄식으로 물들어서야 어디 되겠는가...
여기서 버스에 관한 이야기는 끝났다. 이제 세상밖으로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 하겠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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